움직임 실험의 첫 번째 방식 — 관찰
움직임을 통한 알아차림
rooted in Feldenkrais Method · ATM (Awareness Through Movement)
음성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안에서 관찰합니다. 관찰하는 동안 몸은 스스로 더 편한 길을 발견합니다. 혼자서도 이어갈 수 있는 실험입니다.
치우치우
힘의집
고대운동은 고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함께 힘을 기르는 활동을 오늘날의 운동 문화로 되살리려는 시도입니다. 피트니스 및 웰니스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운동 문화들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의 운동 문화 또는 전인격적 수련 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직감에서 출발했습니다. 요가, 태극권과 같이 이미 현대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전인격적 운동 전통들이 많지만, 저는 이란의 주르카네, 인도의 아카라, 러시아의 기르보이, 이스라엘의 펠든크라이스 메소드에 특히 관심을 가져 2010~201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지금까지 수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기간에는 소마틱스와 바디워크 영역 전반에 걸쳐서도 연구를 하였는데, 이 모든 수련과 연구를 바탕으로 고대운동이라는 말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고대운동이 무엇인지 저도 잘 모릅니다. 책 제목을 고대운동이라 해두고 모른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저도 잘 모르고, 심지어 왜 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해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때, 대체 내가 무엇에 대해 쓸 수 있을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고 아는 만큼만 쓴다면 이 글을 읽은 훌륭한 지성인들이 모르는 부분들을 채워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완성의 무언가를 내놓는다는 창피함과 함께 소심함이 없진 않지만, 고대운동이 중요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는 묘한 확신과 이 진실에 대한 저의 진심을 담아 용기 있게 글을 써 내려가 보고자 합니다. 저의 진심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라고, 여러분만의 진실을 발견하시길 기원합니다.
먼저 이 책은 수많은 운동 전통과 현대적인 접근 방식들을 뒤섞으며 다루게 될 텐데요. 각각의 전통과 전통 방식을 다루기보다는, 이를 통해 발견한 가치와 의미들을 경험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제가 고대운동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기술은 진자 운동과 알아차림으로 요약됩니다. 이 두 가지는 인류의 원형적인 움직임과 고유한 학습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인류는 알아차림이라는 의식적 기능이 약 200만 년 전에 발현되면서, 생존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여갑니다. 그리고 100만 년쯤부터는 돌을 던지거나 방망이를 휘두르는 등 진자 운동이 정교해지고, 수많은 도구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문명을 촉발시키기 시작합니다. 흥미롭게도 인류의 가장 큰 발견 중 하나인 불은 30만 년 전부터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알아차림은 그렇다 쳐도 불이 방망이보다 뒤늦게 활용됐다는 사실에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초중고 교육을 받아오면서 단 한 번도 방망이를 휘두른다는 것에 대한 가치나 의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은 농경 사회의 등장을 위한 어떤 원시적 단계에 국한된 활동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저는 방망이를 휘두르는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요? 돌이켜보면 2009년~2015년 사이에 정말 무차별적으로 운동 문화들을 탐구했던 것 같습니다. 20대 시절, 저에게 대학은 운동이었습니다. 이때 각종 교육 및 해외 답사비에 지출한 돈을 합하면 대학 4년과 석박사 비용을 훌쩍 넘길 것입니다. 이렇게 무작정 탐구를 할 수 있었던 건, 탐구 대상을 고르는 기준이 '내 몸에 끌리는가?'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끌리는 대로 탐구를 하다 보니 마음껏 탐구할 수 있었고, 어느덧 주르카네, 아카라, 기르보이 그리고 펠든크라이스 메소드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길로 이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매니악한 탐구에는 돈이 들기 마련이었고, 저는 제가 탐구하고 발견한 것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을 함께 시작했습니다. 2012년에 JKL 소마틱스 연구소(현 소마앤바디 및 힘의집의 모태)를 설립하여 소마틱스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고 배포하고 워크샵을 여는 활동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를 오래 지켜본 이는 제가 하는 일을 비즈니스가 아닌 자기계발 또는 취미 생활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는 저는 내심 기쁜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운동을 통해 생업까지 해결하고 있는 저로서는 운동이 비즈니스에 국한되어 버린다는 건 서글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탐구가 깊어져 갈수록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주르카네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깊이를 간직한 운동 문화이고, 아카라 역시 이에 못지않아서 체계만 잡히고 홍보만 한다면 충분히 문화유산 지정이 가능한 수준입니다. 러시아의 기르보이는 국가적인 지원 아래 케틀벨 스포츠로 발전했고, 펠든크라이스 메소드는 한 개인의 방식에서 이스라엘의 신체 교육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을 무려 네 가지나 다루려고 한 점에서 혼란은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에서도 한국인의 천성 덕인지, 이 네 가지를 비빔밥처럼 어우러트리며 함께 다룰 수 있었습니다. 비빔밥이 이것저것 비볐다라는 단순한 행위를 담아 비빔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처럼, 고대운동도 그런 이름입니다. 그저 함께하니까 좋더라, 이걸 그냥 묶어서 고대운동으로 불러야겠다고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이 네 가지로부터 어떤 보편적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됐고, 이를 모든 운동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대운동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일은 한동안 무시됐습니다. 무엇으로도 정의하지 않아도 수련을 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였기 때문입니다. 첫 고대운동 모임은 2015년에 처음 시작됐습니다. 모임 이름이 하우스 오브 스트렝스였습니다. 이 모임이 시작하게 된 계기는 뜬금없지만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유행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조그만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저희는 메르스 사태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신규 레슨이 줄어들면서 이때를 기회 삼아, 저의 동업자 방덕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이란 주르카네, 인도 아카라 문화를 답사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방덕은 답사를 다녀오게 되고 이때 얻어온 방망이가 모임이 시작되게 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모임의 성격은 단순했습니다. 페르시안밀, 메이스벨, 케틀벨을 통해 진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케틀벨의 경우는 그전부터 해오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2013년 당시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에서 열린 케틀벨 스포츠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하였고 그 이후로 운동 모임을 열어왔습니다. 이 모임에 페르시안밀과 메이스벨이 더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 모임은 작은 오피스텔에서 진행됐는데, 그렇게 2명에서 시작된 모임이 점차 커지면서 서울 신촌에 힘의집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고대운동 센터, 힘의집이 등장하게 되는 데에는 또 다른 계기가 작용합니다. 저는 방덕 선생님이 이란을 다녀온 2015년에 이란 주르카네 스포츠 협회로부터 초청을 받아 이란에 방문하게 됩니다. 저에게는 첫 방문이었던 주르카네가 아직도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처음에는 이란 현지의 다양한 디자인의 방망이를 돌릴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특히 한국에는 없는 5키로 이상의 고중량 방망이를 마음껏 돌리는 데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방망이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고대의 운동 문화였습니다. 주르카네 공간은 마치 원형 극장처럼, 중앙에는 밑으로 파고 들어간 8각형의 운동 공간과 그 주변으로 계단 구조로 만들어진 객석이 둘러져 있습니다. 중앙의 8각형 공간 고드 Gowd گود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며 운동을 하는 모습은 악사 역할을 하는 모쉐드의 북 연주 및 노래가 어우러지며 한 편의 공연예술로 보였습니다. 운동의 시작과 끝. 중간중간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는 커뮤니티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운동의 강도는 결코 낮지 않았는데, 때문에 수련이자 스포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즉 이 운동 문화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운동 문화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주르카네 리추얼 또는 주르카네 세레모니로 불리는 동시에, 주르카네 스포츠의 형태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대의 운동 분류 방식으로 주르카네를 분류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르카네는 그냥 주르카네일 때 완전히 설명됩니다. 여기서 주르는 힘이고 카네는 집입니다. 즉 힘을 기르는 집이라는 의미에서 주르카네입니다. 마치 한국 말에 운동장이라는 말과 같은 형식입니다. 운동하는 장을 운동장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의미 부여도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하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운동입니다. 특별히 이 운동을 수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르카네에서 이루어지는 운동의 이름은 주르카네입니다. 그런데 이 주르카네를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리추얼, 스포츠, 세레모니와 같은 분류를 위한 수식이 꾸며진 것입니다.
조금 장황해졌는데, 저는 이 주르카네를 경험하고 이 전인격적이고 전방위적인 운동 문화가 사실 어느 문화권에서나 존재했었으리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마당 문화가 있습니다.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형태의 활동을 아울러 마당이라고 부른다면 어떨까요? 마당은 정말 많은 것들이 뒤섞여지는 공간입니다. 마당에서 씨름, 들돌 들기를 하는 모습은 운동에 가깝고, 앞뒤로 잔치가 있으니 세레모니에 가깝다가도, 마을 굿을 하고 있을 때는 리추얼 공간이 됩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화합의 장이기도 합니다. 이 마당 문화의 현대적인 예시로 태권도가 있습니다. 태권도는 실제로 화합의 운동 문화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이 화합이 공동체적인 지향성을 가진다는 점인데요. 태권도는 태권도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가 아닌, 세상이라는 공동체에 기여하는 식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태권도 도장 안에는 그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문화적 시설이 포함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태권도장은 어린이 놀이 시설이 들어가 있고, 방학이 되면 태권도장은 캠핑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미국은 예절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돈이 적게 들어 가난한 마을에서도 잘 정착합니다. 이처럼 태권도는 태권도로 통합되는 수련 문화를 지향하기보다, 세상과 화합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는 이런 주르카네도 이와 다를 바가 없으며, 더 나아가 본래의 운동 문화는 모두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고대의 전통 운동 문화도 단순히 운동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아카라 사원은 하누만 신을 모시고 그 신성을 기르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인도 전통 레슬링의 성지입니다. 그곳은 메이스벨을 돌리는 운동 문화가 남아 있는데, 신성을 기르는 행위와 함께 메이스벨을 돌립니다. 이처럼 고대의 운동 문화는 어느 문화권에서든 전인격적, 전방위적 활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요가 역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대운동이라는 비빔밥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대략적으로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고대운동을 통해 발견한 운동 방식과 운동법을 소개할 차례입니다.
고대운동은 운동 탄생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즉 리추얼, 프랙티스, 챌린지, 세레모니 등으로 분화되기 전의 운동의 형태. 즉 운동이라는 형태가 탄생하는 시점을 바탕으로 하는 운동 문화입니다. 이를 RPC²라는 그래프를 만들어 나름 구조화시켜 놓았습니다.
이 구조화된 모델에는 여러 사람들의 사랑과 영감이 녹아 있습니다. 영감은 그렇다 쳐도, 사랑이 녹아 있다는 말이 좀 낯부끄럽게 느껴지지만서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사랑과 영감이 녹아 있다고 하기에는 좀 너무 딱딱한 느낌도 있어서 민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사랑과 영감을 강조하는 건, 이 모델이 저의 수련뿐 아니라 삶 속에서 발현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Ritual은 우리말로는 배움으로 둡니다. Practice는 다짐, Challenge는 겨룸, Ceremony는 나눔입니다. 한자어를 피하고 우리말의 동사로서 느껴지는 것을 찾아본 것입니다. 저의 지금까지의 수련을 가만히 지켜보면 이 4가지의 적절한 순환이 저를 성장시켰습니다. 제가 고대운동을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난 고대운동을 왜 하는 것일까? 그리고 고대운동은 무엇일까? 를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정반합을 수십 차례 반복하다가 어느덧 정교한 말장난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없이 진지하게 이 말장난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것이 이것이다라고 하고 싶지만, 제 자신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고대운동을 정의하는 이 작업을 저는 말장난이라 여기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한 어떤 방편 정도로 생각합니다. 결국 고대운동이 무엇인지는 여러분 각자에게 달린 문제입니다. 사실 고대운동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고대운동을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고대운동을 통해, 아무튼 고대의 운동 문화가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는 시도를 흥미롭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실용적으로 얻어갈 것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최대한 실용적인 내용들도 넣어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 글은 블로그처럼 연재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 내용이 바뀌거나, 갑자기 사라지거나 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완전한 책으로 쓰여지고 나서 짠 하고 내놓고 싶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다가는 아마 몇 년 걸리다가 어느 순간 시집이 되어 있거나, 부조리 소설이 될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이 과정이 무엇으로써 보여지는 것보다 즐겁기를 바랍니다. 최근 저는 수련을 하다가 좌우앞뒤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좌우앞뒤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좌충우돌하는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는 알아차림이 곧 수련이고, 삶이고, 놀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글도 그렇게 쓰려고 합니다.
몸을 흔들흔들거리며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지금 그러고 있거든요.
고대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중얼중얼거리는 느낌이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사실 전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고대운동이라는 걸 하는 주제에 뭐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냐고 한다면, 사실 저도 그게 항상 고민이었다는 것으로 답변을 드립니다. 아무튼 그 고민 끝에 나온 게 고대운동을 통한 전방위적 운동법입니다.
보통 전신 운동이라는 표현은 많이 들으셨을 겁니다. 전신이 다 운동이 된다는 말이죠. 반면 전방위적이라는 건, 전신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전인격적이라는 말처럼 특정 방위를 더 중심으로 하는 수련이 아닌, 말 그대로 하나의 수련으로 전방위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 삶과 자연을 아울러 말이죠.
다시 말장난으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다시 최대한의 실용을 담아, 현대의 피트니스와 웰니스 문화에 화합하겠다는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한마디로 전방위적 운동법이란 스트렝스 퍼포먼스, 명상적 역량, 관계적 응집력을 함께 발달시키는 운동법입니다. 사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갖출 때, 한국말의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힘이라는 말은 결코 물리량으로만 환산해서 쓰지 않습니다. 힘은 사람들을 화합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개인의 강력한 신체를 드러내는 목적으로도 사용됩니다. 또한 마치 명상을 오래 수련하여 존재감이 남다른 사람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힘을 느낍니다.
따라서 전방위적 운동법은 말 그대로 힘을 총체적으로 기르는 것입니다. 현대의 문화는 힘을 사정없이 조각내어 따로따로 기릅니다. 영어식 표현들을 가져다 붙이면서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트렝스 퍼포먼스라는 말을 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설명하는 최소한의 구분은 스트렝스 퍼포먼스, 명상적 역량, 관계적 응집력이라 여겼습니다. 이 세 가지 개념을 통해 힘의 정체를 좀 더 명확히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힘의 정체를 생각하다가 아래와 같은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스트렝스 퍼포먼스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명상적 역량을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명상적 역량은 중심화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하려고 합니다. 정수리를 하늘로 띄워, 머리가 중심선에 딱 놓여지는 감각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중심선에 놓여지는 찰나의 순간은 있을지언정 그 중심선상의 느낌 자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좌우앞뒤로 끊임없이 움직여지고 있는 몸에서 머리가 놓여지는 위치를 느끼며 균형을 잡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를 중심화라고 합니다. 이 중심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균형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스트렝스 퍼포먼스는 이 중심화가 얼마나 잘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스트렝스와 퍼포먼스 사실 이 두 가지는 따로 사용하는 개념이지만, 여기서는 둘을 하나로 봅니다.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면, 스트렝스 퍼포먼스와 명상적 역량을 함께 발달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놀이 구조는 생존 및 승패 여부를 걸고 진행이 됩니다. 놀이는 실전 감각을 기르는 시뮬레이션입니다. 즉 잘 노는 사람이 잘 싸울 수 있습니다.
고대의 전투는 막무가내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대의 전사들은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며 싸웠습니다. 그러나, 매우 전략적이었습니다. 선두에서 진행되는 전투는 뒤엉켜 싸우기보다는 상대의 체력을 빼놓는 견제 또는 빈틈을 공략하는 공략에 가까웠으며, 이 활동은 체력적으로 10분을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체력이 빠지면 자연스럽게 후방의 인원과 교체되면서 전투를 지속했습니다. 만약 이 교체 타이밍이 좋지 못한 경우, 체력은 더 빠르게 소진되며, 빈틈이 커지며 한 번에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즉, 전황을 파악하는 관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빈틈은 감추고 상대의 빈틈을 노리며, 언제 어디서 갑자기 무엇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고 평정심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Ritual
심화 과정
아기는 태어나서 뒤집기, 기기, 앉기, 서기까지 수천 번의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는 강요나 평가가 없습니다. 오직 순수한 탐구만 존재합니다.
아기는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한시도 멈추지 않죠. 아기에게 주어진 세상은 바닥이 전부입니다. 그 바닥을 뒹굴거리며 끝없이 탐구해가다가, 어느새 구르고, 앉고, 서고 걷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때 '배우게 되는 동작'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배우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아기는 50주 걸음마 과정을 밟아서 걸음마를 배우는 게 아닙니다.
아기는 어느 날 자기 팔을 발견하고 놀랍니다. 그 팔을 흔드는 움직임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것에 또 놀랍니다. 팔을 흔들다 몸이 들썩여 조금 미끄러지면, 다시 놀랍니다. 아기는 그렇게 놀라며, 기뻐하며 움직임을 배웁니다. 처음부터 알고 배우는 게 아닙니다. 어쩌다 알게 되는 것의 연속 — 그 놀라운 발견들이 모여 걸음마까지의 과정을 만듭니다.
움직임 실험의 첫 번째 방식 — 관찰
rooted in Feldenkrais Method · ATM (Awareness Through Movement)
음성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안에서 관찰합니다. 관찰하는 동안 몸은 스스로 더 편한 길을 발견합니다. 혼자서도 이어갈 수 있는 실험입니다.
움직임 실험의 두 번째 방식 — 터치
rooted in Feldenkrais Method · FI (Functional Integration)
고대운동의 상징인 레슬링을 미세한 터치로 미분하여, 혼자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습관과 새로운 가능성을 파트너와 함께 탐구합니다.
알아차림, 몸을 다시 짓는 첫 도구.
인류는 가장 센 근력이나 가장 빠른 반응 쪽으로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무게의 근육이라면 침팬지가 우리보다 1.3배 남짓 센 힘을 냅니다. 우리가 대신 얻은 것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잠시 멈추는 능력입니다. 이 멈춤 속에서 지금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을 알아차림이라 합니다. 알아차림은 생각이 아니라 감각에 가깝습니다. 몸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안에서 느끼는 것이고, 고유감각이 그 바탕이 됩니다.
알아차림이 중요한 이유는 신경계가 쓰는 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신경 가소성이라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적응입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반복해도 신경은 그것을 새기기 때문에, 습관과 굳은 몸은 이렇게 생깁니다. 다른 하나는 학습입니다. 학습은 방향이 있는 변화이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이 알아차림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며 움직일 때 뇌는 그 움직임의 회로를 새로 만듭니다. 즉, 같은 동작을 반복해도 알아차림이 있으면 학습이 되고, 없으면 적응에 그칩니다.
다만 어떤 알아차림이냐가 중요합니다. 집중은 한 점을 향한 주의여서 정해진 정답을 새기고, 관찰은 열린 주의여서 차이를 새깁니다. 배움은 정답이 아니라 차이에서 옵니다. 어느 쪽이 더 가벼운지, 어디가 더 움직이는지를 비교하면서 몸은 스스로 더 나은 길을 찾습니다. 아기가 그렇게 걷기를 배웠고, 누구도 아기에게 걷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몸은 본래 스스로 배우는 방식을 알고 있고, 알아차림이 있을 때 그 방식이 다시 작동합니다. 이 알아차림을 기반으로 길러지는 것이 관찰력입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는 사람은 운동에서든 삶에서든 어디서나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핵심 키워드알아차림 · 신경 가소성 · 생존력 · 집중과 관찰의 차이 · 방향 · 적응과 학습 · 스스로 배우는 방식
Practice
심화 과정
초기 인류는 방망이를 휘두르며, 온몸으로 힘을 다졌습니다. 그 움직임은 지금도 우리 몸에 남아 있습니다.
현대의 운동 도구는 근원을 따라가면 방망이로 돌아갑니다. 방망이를 다루면, 수백만 년 생존을 함께해 온 엄지·손목·팔·어깨·몸통·엉덩이·다리·발가락이 유기적으로 함께 움직입니다. 당신 안의 초기 인류의 움직임 DNA가 깨어납니다. 인간도 동물입니다. 원형적인 움직임으로 힘을 다루면, 효율적인 움직임도 함께 몸에 익습니다.
알아차림을 통해 발견한 이 기술은 200만 년에 걸쳐 수많은 도구를 파생시킵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은 인류가 처음 도구를 쥐는 순간을 그립니다 — 하늘로 던져 올린 방망이가 단 한 컷 만에 우주선으로 바뀝니다. 도구의 시작과 끝 사이, 수백만 년을 관통하는 것은 도구를 다루는 몸입니다. 이 원형의 기술은 이미 우리 몸에 내재되어 있고,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고대진자운동은 가장 원형적이고
유기적인 힘을 기르는 방식입니다.
'고대진자운동'은 고대운동의 핵심 운동법인 페르시안밀 기리, 메이스벨 스윙, 케틀벨 스내치를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내면소통』 저자이자, 명상하는 한국을 만들어가고 계시는 김주환 교수님이 정의하셨습니다. 힘의집은 이 말을 아홉 가지 도구로 넓혀 씁니다. 몸을 진자처럼 흔들어 쓰는 도구라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도구의 무게보다 장단에 실은 몸의 리듬으로 힘을 기릅니다. 주르카네에서는 북 장단에 맞춰 수십 회를 이어 갑니다.
2020 이란 · 주르카네 — 테헤란에 위치한 주르카네에서 만난 아미르 카샤니 선생님의 북 연주 링크 보기 ↗
사람의 걷기는 진자 운동에 기반합니다. 다리는 골반에 매달려 추처럼 앞뒤로 흔들리고, 발은 땅을 딛을 때마다 탄성으로 튕겨 오릅니다. 어린아이가 온종일 뛰어도 지치지 않는 것은 근육이 많아서가 아니라, 땅을 딛고 튕겨 오르는 탄성이 뛸 때마다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고대진자운동이 되살리려는 것이 바로 이 탄성입니다. 방망이가 그리는 호를 따라 힘을 보내고 되받는 동작을 반복하면, 근육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리듬으로 움직이는 방식을 익히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무게가 호의 끝에 닿는 순간에 받아야 탄성이 되돌아오고, 그보다 이르거나 늦으면 힘이 흩어집니다. 그런데 머리 뒤로 넘어간 방망이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 받을지는 눈이 아니라 몸의 감각, 즉 고유감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진자 운동은 이 감각을 훈련하는 운동이고, 그 타이밍이 몸에 익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것을 리듬감이라 합니다.
탄성과 리듬을 잃는 것은 노화 때문이 아닙니다. 쓰지 않아서 퇴화하기 때문입니다. 보르츠는 1982년 미국의학협회지에서, 노화라고 불리는 변화의 상당수가 실은 사용하지 않은 결과라고 썼습니다. 앞 이야기에서 말한 신경 가소성의 원리에 따라, 리듬은 계속 쓰기만 하면 나이가 들어도 유지될 뿐 아니라 더 깊어질 수 있습니다. 주르카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련자는 백발의 노인들이며, 이들은 운동하는 젊은 친구들을 위해 능숙한 리듬감을 뽐내며 북을 연주해 주곤 합니다.
핵심 키워드진자 운동 · 리듬감 · 생명력 · 타이밍 · 탄력있는 움직임 · 불용에 의한 퇴화 · 고유감각
Bortz, JAMA 1982(불용과 노화)
Challenge
심화 과정
고대의 전사들은 불필요한 힘을 빼면서, 중심을 지켜내는 힘을 길렀습니다.
고대의 전사들은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명상 상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고대의 전투는 적과 아군이 뒤엉키는 백병전 — 이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생존의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전사들이 유지한 것은 사실 고요함이었습니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레슬링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을 이끄는 힘을 길렀습니다.
그들에게 힘이란, 나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수많은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초기 인류의 능력은 체력과 기술력에 높은 가산점을 줬다면, 점차 사회를 형성하면서 지력, 권력으로 힘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능력 쓰임의 방향을 면밀히 모색하는 대화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대화를 통해 마치 연금술처럼 튀어나오는 수많은 지혜들이 철학이 되고 과학이 됐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거닐던 짐나지움은 사실 레슬링 체육관이었습니다. 그들은 한바탕 레슬링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헬스장에 가는 것처럼 보통의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헬스장에 가서는 운동만 하고, 도서관에 가서는 책만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메이스벨 운동의 원형이 남아있는 인도의 아카라 사원은 고대의 학술원이었습니다.
힘은 체덕지의 공통 기반이 됩니다. 몸의 힘, 덕의 힘, 지혜의 힘을 쌓는 체육, 덕육, 지육이 필요합니다.
힘의집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꽃피운 고대의 운동 문화를 바탕으로,
함께 힘을 배우고, 다지고, 겨루고, 나누며 체덕지를 단련합니다.
중심은 정해진 자리가 아니라, 매 순간 다시 찾아지는 관계입니다.
같은 중심을 다루지만 중심화Centering와 중심부Core는 다릅니다. 중심부, 곧 코어는 골반과 몸통 주변의 근육을 가리키는 구조적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반면, 중심화는 내 몸의 무게가 어디에 모여 있고 어디로 흐르는지를 다루는 기능통합적 개념입니다. 따라서 코어 구조에 힘을 준다고 해서 중심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중심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근육과 힘줄, 관절에서 올라오는 감각, 즉 고유감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토마스 한나는 외재감각으로 느끼는 몸을 바디body, 고유감각으로 느끼는 몸을 소마soma라고 구분했는데, 중심부는 바디의 용어이고, 중심화는 소마의 용어입니다. 그래서 중심화 훈련은 근육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감각을 기르는 일이고, 그 감각은 흔들릴 때 가장 잘 드러납니다. 서 있는 몸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금씩 기울었다 되돌아오는데, 중심화를 익힌 소마는 이 되돌아옴을 따로 생각하지 않고도 해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수련장 밖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고, 흔들리는 상황에서 다시 서는 법을 몸이 이미 알고 있게 됩니다.
핵심 키워드중심화 · 코어와 중심화의 차이 · 고유감각 · 바디와 소마
몸을 밖에서 보는 body와 안에서 겪는 soma로 나누는 관점은 토마스 한나의 소마틱스를 따랐습니다.
Ceremony
심화 과정
우리는 힘을 어떻게 나눴을까?
우리에게도 힘을 기르는 공간이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학교마다 운동장이 있고, 동네마다 공터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힘이 자라는 자리는 특별한 시설이 아니라, 그저 열려 있는 땅이었습니다. 운동장보다 오래된 것은 마당입니다. 마당은 원래 비어 있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놓지 않고 비워 두는 것이 마당의 쓸모입니다.
그 빈터에서 곡식을 널어 말리고, 타작을 하고, 아이들이 뛰놀고, 혼례와 장례를 치르고, 씨름판을 벌이고, 명절이면 온 동네가 모여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마당은 일터이자 놀이터이자 겨루는 자리이자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배움과 다룸과 겨룸과 나눔이 아직 갈라지지 않은 채, 한 마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것을 이란 사람들은 주르카네라 불렀습니다. 주르는 힘, 카네는 집 — 힘의 집. 마을마다 하나씩 있어, 사람들은 일과가 끝나면 그곳에 모여 방망이를 돌리고 레슬링을 했습니다. 특별한 사람들의 훈련소가 아니라 삶 속에 놓인 운동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의 힘의집은 열린 땅이 줄어든 도심 구석에 지붕을 얹어 마련한 운동의 장입니다. 힘의집에서는 운동이 끝난 후에 바로 흩어지지 않습니다. 차를 함께 마시고 대화를 하며 힘을 나눕니다.
힘의집은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고대운동 축제, 고대운동 한마당을 열려고 합니다. 페르시아의 주르카네, 인도의 아카라, 러시아의 기르보이처럼 각자의 땅에서 이어져 온 고대의 운동 전통을 한자리에 모아, 서로의 운동을 보고 배우고 함께 겨루는 자리입니다. 각종 고대운동의 시연과 경기, 그리고 웰니스 프로그램이 한자리에서 열릴 것입니다.
본보기는 태권도 한마당입니다. 국기원이 1992년부터 해마다 여는 이 대회는 승부를 가리는 겨루기 대신 품새, 격파, 시범처럼 태권도의 여러 갈래를 한자리에 펼쳐, 전 세계 태권도인이 모여 서로의 수련을 나누는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태권도가 세계 곳곳에서 지역 공동체의 기반이 되어 온 데에는 이런 자리가 있었습니다.
고대운동 한마당은 힘의집이 다져 온 '공동체를 위한 기반'을 집 밖으로 넓히려는 것입니다. 마당에 온 동네가 모여 줄다리기를 했듯이, 한마당에는 나라와 전통이 다른 사람들이 모입니다. 실력을 겨루러 오는 자리가 아니라 힘을 나누러 오는 자리입니다. 힘을 나누는 길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고, 내 나라와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홍익인간의 길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운동 한마당은 그 정신을 운동으로 실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몸을 움직인 뒤, 이야기가 담기는 자리.
함께 운동을 한 후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느껴지는 따뜻한 연결감 속에서 회복력이 자라납니다.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 너와 나, 일과 삶, 운동과 휴식 등 알게 모르게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갈등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를 연결하고 화합해 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핵심 키워드연결감 · 회복력 · 화합